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 합의, 무엇이 문제일까?
2025년 1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공사(한전)가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글로벌 합의’를 맺었습니다. 언론에 처음 보도될 때는 단순히 “양측이 소송을 취하하고 협력을 강화했다”는 식으로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몇 달 뒤 구체적인 조항이 드러나면서, 국내에서는 “굴욕적 합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사건의 배경, 합의 내용, 그리고 파장까지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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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이런 합의가 필요했나?
사건의 출발점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독자 개발했다고 홍보한 APR1400 원전에 자사의 원천 기술이 포함돼 있다며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한국은 “우리 기술로 만든 것”이라며 맞섰고, 소송은 국제 분쟁으로 이어질 조짐까지 보였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기술 다툼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은 체코·폴란드 등 해외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웨스팅하우스가 “IP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은 수출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거래 상대국을 압박한 겁니다.
결국 수주 경쟁에서 불리해진 한국은 “분쟁을 더 끌면 오히려 손해”라는 판단을 내렸고, 2025년 초 마침내 양측은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합의에 이릅니다. 문제는 합의의 세부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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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개된 합의 조항
처음 발표 때는 세부 내용이 비공개였지만,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조항이 알려졌습니다.
원전 1기당 비용: 한국이 해외에 원전을 수출할 경우, 웨스팅하우스에 물품·용역 구매 6억 5천만 달러와 기술 사용료 1억 7천 5백만 달러를 지급해야 합니다. 합계 약 **8억 2천 5백만 달러(한화 1조 원 이상)**입니다.
기간: 합의 유효 기간은 50년. 사실상 한 세대를 넘는 장기간 구속입니다.
차세대 원전 제한: 앞으로 개발할 소형 모듈 원전(SMR)이나 차세대 기술도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이 독자 기술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웨스팅하우스가 동의하지 않으면 해외 수출에 제약이 생깁니다.
수주 지역 제한: 북미, 체코 제외 유럽연합,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은 웨스팅하우스 우선 진출 지역으로 정해져, 한국이 수주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한국의 원전 수출 시장을 반토막 낸 셈입니다.
분쟁 해소 효과: 그 대가로 웨스팅하우스는 모든 소송을 철회했고, 한국은 체코 원전 수주 참여 길을 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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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에 불리한 이유
겉보기에는 ‘소송 종결’이라는 이득이 있었지만, 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국 입장에서는 불리한 점이 많습니다.
첫째, 막대한 비용입니다. 원전 1기 수출 때마다 1조 원 가까운 금액을 웨스팅하우스에 줘야 합니다. 수출 단가를 생각하면 수익성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시장 축소입니다. 합의로 인해 한국이 진출할 수 없는 지역이 늘어났습니다. 체코는 예외로 두었지만, 폴란드·스웨덴·슬로베니아 같은 유럽 시장은 사실상 포기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올해 들어 폴란드 원전 사업에서 철수했고, 다른 유럽 프로젝트에서도 발을 뺐습니다.
셋째, 기술 자율성 상실입니다. SMR 같은 차세대 기술 개발도 웨스팅하우스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즉,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한국 원전 산업은 미국 회사의 눈치를 보며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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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왜 이렇게 합의했을까?
한국 정부와 한수원·한전이 이런 불리한 합의를 맺은 배경에는 체코 원전 수주가 있었습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은 유럽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한국이 반드시 따내고 싶어 한 사업입니다. 웨스팅하우스가 소송을 유지하면 입찰 참여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었기에, 결국 한국 측이 양보를 크게 해서라도 합의를 추진한 겁니다.
즉, 단기적으로는 체코 원전 진출이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원전 산업의 독립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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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판 여론
합의 내용이 알려진 뒤, 국내에서는 “매국적 합의”,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한 건 수주를 위해 미래 50년을 팔아넘겼다”고 지적합니다. 원전 수출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던 정부의 전략이 오히려 제약을 받게 된 셈입니다.
또한 해외에서도 “한국이 사실상 웨스팅하우스의 하청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자립 기술을 확보하려는 다른 나라들 역시 “한국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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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앞으로의 과제
정부는 비판 여론이 커지자 합의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미 체결된 계약을 수정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독자 기술 확보: SMR과 차세대 원전에서 확실히 웨스팅하우스와 구분되는 자체 기술을 확보해야 합니다.
2. 시장 다변화: 제한된 지역을 피해서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새로운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합니다.
3. 협상력 강화: 앞으로는 단기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장기적 산업 전략을 고려해 협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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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의 합의는 표면적으로는 소송을 종결하고 체코 원전 사업 진출 길을 열었다는 성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50년간 매출의 상당 부분을 미국 기업에 의존하고, 주요 시장에서 활동할 권리를 잃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한국이 단기 성과와 장기 전략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앞으로는 “급한 불 끄기”식 합의가 아니라, 진정한 자립과 협력 사이의 균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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